일희일비 않고, 흘러가는 대로
<바르게 살자> 정재영
2007.10.18 / 유지영 기자 

정재영은 미래가 두렵지 않다. 열심을 다하다 보면 새로운 방법론이 절실해지고 그게 기회가 된다. <바르게 살자>는 한 일보다 할 일이 많은 정재영이 택한 또 하나의 방법론이다.


“그리스 조각 같아요. 멋져요.” 셔터를 누르며 사진작가가 소리친다. 잔뜩 각을 잡고 있던 정재영은 멋쩍은 듯 웃는다. 아닌 게 아니라 정재영이라는 피사체가 이렇게 멋졌나 싶다. 외모가 변한 탓이다. 촬영 중인 <신기전> 때문에 5kg을 감량하고, 머리카락도 묶일 만큼 길었다.

<바르게 살자>의 융통성 제로 캐릭터 ‘정도만’의 자취는 온데간데없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정재영은 영화를 봤는지부터 묻는다. 일반시사로 봤다고 하자, “잘 하셨네. <바르게 살자> 기자시사 때 생각보다 많이들 안 오셔서, 참. 연극할 때도 관객이 있을 때, 없을 때는 천지 차이거든요. 웃음이란 건 남이 웃어서 같이 웃게 되는 게 큰데. 그게 코미디영화의 맹점이죠.” 방금 전 사진촬영 때의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편안한 복덕방 아저씨 수다 모드로 넘어갔다. “맥주 한 잔 드실래요?” 졸지에 음주 인터뷰가 됐다.

공감을 얻기 위한 연기



정재영의 짝패 장진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은 <바르게 살자>는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조감독 출신인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이다. 강직함이 지나쳐 강력계 형사에서 삼포시의 한 시골마을으로 좌천된 순경 정도만은 새로 부임한 경찰 서장에게 딱지를 끊은 게 인연이 돼 ‘은행강도 모의훈련’에 강도로 투입된다. 정도만이 강도 역할에 최선을 다한 나머지, 사망자가 속출해 특수기동대가 투입되고, 이 모든 상황이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정재영은 <바르게 살자>의 시나리오를 읽고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함을 느꼈다. ‘은행강도 모의훈련’이라는 색다른 소재로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매력을 십분 살렸기 때문이다. ‘가짜’ 실신, 사망, 강간 등을 표현하는 방식이 기발해서 다른 코미디와 차별화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정도만을 연기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라희찬 감독은 "터미네이터 같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저돌적인 추진력적인 측면을 뜻하는 말이었다. "터미네이터처럼 굴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공감을 얻진 못할 것 같다"는 게 정재영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반대의 방법을 택했다. “정도만의 표정만으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인간적인 감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캐릭터로 접근한 거죠.” 정말 정도만은 한 번도 웃지 않을 만큼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바르게 살자>에선 연기를 한 게 없어요. 이건 내 연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영화가 아니거든요. 함께 출연한 많은 배우들 힘에 의해 돌아가는 거죠. 저는 그냥 그 축을 따라 정직하게.”

특히 은행과 그 바깥에서 대치하는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했다. “은행 신에 나오는 배우들과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의견을 나눴죠. 리허설도 하고, 연극처럼 찍었어요. 스탭들이랑 공기 좋은 삼척에서 술도 진짜 많이 마셨죠.” 특유의 대사발과 아이러니한 상황이 속출하는 장진 감독의 각본은 라희찬 감독의 연출에 의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런 흐름을 만들어냈다. “라희찬 감독이 리얼리티를 추구해요. 그래서 장진 감독님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이 연출하는 게 더 좋아요. <웰컴 투 동막골>도 그렇고, 잘 됐잖아요. 장단점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죠.”

정직하게 걸어가



‘정재영의 발견’이란 얘기가 오갔던 <귀여워> <아는 여자> 이후 그의 행보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일 수 있었다. <바르게 살자>에 이르기까지 정재영이 연기한 인물들을 보면, 한 인물의 각기 다른 선택과 다른 시절을 다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것은 변신의 폭이 크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하지만 바꾸기 위한 바꿈은 의미가 없다는 게 정재영의 생각이다. “예전에 <피도 눈물도 없이> 독불이 역할을 했을 때, 말 참 많았죠. 그전까지는 뺀질뺀질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센 역할을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해보기 전까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결과로 판단하는 거지. <나의 결혼원정기> 이후로는 너무 인간적인 캐릭터만 하지 않느냐고 또 그래. 변신이란 게 확확 안 돼요. 그건 로버트 드 니로도, 알 파치노도 안 돼요. 강박을 버리고 꾸준히 하다보면 계기가 생기고, 바뀌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생기고, 결국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되는 거죠.”

정재영은 10년 후를 내다본다. 작품이 몇십 편 더 쌓이면 그때는 또 새롭게 평가될 수 있을 테니까. 예전에는 배역에 대한 욕심도 많고 역할을 튀게 만들까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반대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안 보이면서, 작품의 색깔에 맞출까가 화두다. 자기 색깔이 많이 보일수록 '오래가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연기와 개인기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예전엔 진실한 연기만을 추구했는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요. 연기의 기본은 진실인데, 플러스알파로 개인기도 필요하더라고. 진실도, 개인기도 트레이닝이에요. 문제는 게으름에서 오는 것 같아요.” 정재영의 인생관은 어쨌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 열심히 노력해 책임을 지고, 정성 들여 씨 뿌리고 수확하는 정직함을 믿는 것이다.

사진 | 안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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